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과 천명도
(3) 퇴계가 정정한 천명도 퇴계와 추만이 처음 만난 것은 계축년(1553) 가을이었다. 이 때 퇴계와 추만은 천명도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3) 퇴계가 정정한 천명도
퇴계와 추만이 처음 만난 것은 계축년(1553) 가을이었다. 이 때 퇴계와 추만은 천명도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추만은 고친 도와 설을 가지고 와서 퇴계에게 보여주었다. 퇴계와 추만이 그것을 다시 교정하여 완전히 정리함으로써 천명도설은 새롭게 완성되었다. 『퇴계전서』 2, 「천명도설후서」, 321쪽. 이어서 12월 어느날 퇴계는 「천명도설후서」를 지어 추만에게 주었고, 그것을 받은 추만은 「천명도설서」를 지었다. 이 때가 갑인년(1554) 1월 1일이었다. 그러므로 「천명도」 및 「천명도설」이 완성된 것은 계축년 겨울이었고, 여기에 「후서」와 「서」를 갖춘 『천명도설』이 완성된 것은 갑인년 1월 1일인 셈이다. 1554년 1월 1일은 추만이 「천명도설서」를 쓴 날짜이므로, 천명도 및 도설은 그 이전에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완성된 것은 아마도 1553년 겨울일 것이다. 추만과 퇴계가 처음 만난 것이 1553년 가을이었고, 몇 달 뒤에 추만이 수정된 천명도를 퇴계에게 보여주자 그것을 둘이서 다시 수정함으로써 천명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퇴계가 「천명도설후서」를 썼는데, 이 글에는 「천명도설」이 완성된 경위가 기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명도 및 그 도설이 완성된 것은 1553년 가을에서 몇 달 지난 뒤, 그리고 그 해 12월 「천명도설후서」가 쓰여지기 전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천명도설」을 이 논문에서는 편의상 계축년 겨울의 「천명도설」이라고 하고자 한다.
여기서 다시 두 종류의 천명도설, 즉 퇴계와 토론을 한 지 몇 달 뒤 추만이 고친 것과 그것을 다시 고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몇 달 뒤에 보여주었다는 천명도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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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087993&sid=ddangkung&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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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고봉,기대승의,사칠논변과,천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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